고대 인명 사전(관리자 : 文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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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벌가리 (2009-08-31 23:46:40, Hit : 5950, Vote :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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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름 / 떠구지
사람이름 / 떠구지


태종 13년(1413년), 순금사에서 결재(계)를 올리므로 임금이 처결하였다. ‘신더구지’(申加究之) 등을 잡아 고려 익성군(홍규)의 후손에 대해 물으니 모두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모두 석방하라.” 고려 왕씨 후손에 대해 알고도 스스로 이르지 않은 이실 등 스물한 사람은 처인현에 가두고 약비는 진위현에 가두었습니다. “두 등급을 내려 시행하라.” ‘게두’의 성이 왕씨라고 ‘이어구디’가 말했습니다. “게두는 풀어주고 ‘어구디’의 죄를 따진 뒤 두 등급 내려주라.” 왕양귀의 아들 ‘게두’가 살았는지 밝히기 위해 이의산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풀어주도록 하라.” ‘왕걸오미’를 숨겨 준 ‘걸쇠’의 죄는 참형에 해당합니다. “두 등급 내려주도록 하라” 명하였다.

이름에 ‘떠구지’도 있는데 ‘더구지’와 같은 이름으로 생각된다. 조선 때 여성의 머리는 제 밑머리 아닌 ‘외/다레/다리’(加髢를 얹었다. 다리를 얹은 뒤 나무로 땋은 머리모양을 조각한 떠구지를 얹고 떨잠을 한 형태의 머리꾸밈을 ‘거두미(큰머리)’라 한다. 정조 12년(1788년), 가체를 금지하였다. 대신에 쪽 지고 가리마 위에 어염족두리를 쓰도록 했다. 사치를 금한다는 뜻에서 금옥이나 구슬・진주 장식도 금하였다. 내명부는 늘 거두미・어유미(어여머리)를 해야 하며, 혼인 때만은 일반 백성도 할 수 있었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http://www.hani.co.kr/arti/SERIES/61/374078.html

http://blog.daum.net/mitasan/15674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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